
광복 81년, 이제 ‘존엄의 광복’을 생각한다.
오늘은 8월 15일 광복절이다. 81년 전 우리는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았다. 그러나 광복이 되찾은 것은 국토와 주권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이름과 언어를 지키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며 살아갈 자유를 되찾은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2026년 광복절을 맞아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고 싶다. 우리는 나라의 자유를 되찾은 이후, 서로의 존엄도 충분히 지키며 살아왔을까.
존엄에는 자격시험이 없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는 원칙을 선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태어날 때부터’라는 말이다. 존엄은 능력이 뛰어나서 얻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 많이 기여했다고 주어지는 보상도 아니다. 젊고 건강해야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경제적 능력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엄하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 당연함은 생각보다 쉽게 흔들린다. 우리 사회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얼마나 빠른가, 얼마나 생산적인가, 혼자서 얼마나 잘할 수 있는가. 효율이 중요해질수록 느린 사람은 불편한 사람이 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어느 순간 부담스러운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가치를 능력과 효율로 판단하기 시작하면 존엄은 권리가 아니라 자격이 된다. 존엄에는 자격시험이 없다.
편리해진 세상, 모두에게 편리한가
2026년의 대한민국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일상으로 들어왔고, 식당에서는 키오스크로 주문하며 금융과 쇼핑, 행정 서비스도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하는 시대가 됐다. 기술은 우리 삶을 놀라울 만큼 편리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편리하다’는 말의 주어는 누구인가. 누군가에게 키오스크는 몇 번의 터치로 주문을 끝낼 수 있는 편리한 기계다. 그러나 고령자나 장애인,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식사 한 끼를 주문하는 일조차 부담이 될 수 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쉽게 생각한다. “왜 이것도 못 하지?” 하지만 인권의 시선은 질문의 방향을 바꾼다. “무엇이 이 사람을 어렵게 만들고 있지?”
문제를 사람에게서 찾으면 개인의 부족함이 된다. 반대로 환경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가 보인다. 계단 앞에 선 휠체어 이용자에게 필요한 것은 계단을 오를 수 있는 더 강한 힘이 아니다.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다. 사람을 평가하기 전에 그 사람을 어렵게 만든 환경을 먼저 바라보는 것, 인권감수성은 바로 그 작은 시선의 변화에서 시작한다.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서로 다를 뿐이다
우리는 누구도 완전히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어린 시절에는 누군가의 돌봄을 받았고, 아프면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다. 길을 잃으면 누군가에게 길을 묻는다. 나이가 들면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해 왔던 일에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사고나 질병으로 어느 날 갑자기 익숙했던 일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세상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서로 다를 뿐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진다. 느린 사람을 재촉하기보다 기다릴 수 있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탓하기보다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살펴볼 수 있다. 사회는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는 사람들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서로 기다려 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며, 때로는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살아간다. 그 관계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존중이다.
광복 81년, 이제 ‘존엄의 광복’을 생각한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은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가난을 넘어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으며,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기술과 문화를 가진 나라가 됐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디를 향해야 할까.
더 빠른 기술, 더 높은 소득, 더 편리한 생활도 중요하다. 하지만 좋은 사회를 판단하는 기준이 그것만일 수는 없다. 사회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가장 앞서가는 사람의 속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 느린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혼자서는 장벽을 넘기 어려운 사람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가에서 그 사회의 품격이 드러난다.
광복이 우리에게 자유와 주권을 되찾아 준 역사라면, 그 자유의 가치를 오늘의 삶에서 이어 가는 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는 속도가 조금 느리다는 이유로 사람의 가치까지 낮게 평가하지 않는 사회. 나는 그것을 오늘의 언어로 ‘존엄의 광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역사적 광복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자는 것이 아니다. 81년 전 되찾은 자유의 소중함을 기억하면서, 오늘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자유와 존엄까지 돌아보자는 의미다.
인간은 존엄으로 존재하고, 사람은 존중으로 연결된다.
오늘 광복절, 태극기를 바라보며 나라를 되찾은 역사를 기억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 곁의 사람도 바라봤으면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자.
“나는 다른 사람의 존엄을 지켜 주며 살아가고 있는가.”
광복 81년. 이제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일상이다.

■ 칼럼니스트 소개
‘국민에게 공감을 전하는 강사’를 뜻하는 국공선생 김범일 / 법정교육연구소 대표
김범일 대표는 공공기관·학교·기업 등을 대상으로 인권, 청렴, 폭력예방,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인권은 특별한 사람들의 권리가 아니라, 가장 약한 사람의 권리까지 지켜 낼 때 완성된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과 관계 속 존중의 가치를 일상적인 사례와 현장 중심의 교육으로 풀어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