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 내 괴롭힘을 어렵게 신고했는데 근무가 불리해지고 조직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으로 취급된다면 누가 다시 입을 열 수 있을까. 의료기관의 이른바 ‘태움’ 문제를 겨냥해 국민권익위원회가 한 달간 집중신고에 들어갔다. 이번 조치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괴롭힘 행위뿐 아니라 피해자에게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와 신고자·피해자에게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하는 행위까지 신고 대상으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결국 이번 집중신고가 의료현장에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우리 병원은 괴롭힘을 신고한 사람이 그 뒤에도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조직인가.”
‘태움’ 신고만 받는 게 아니다…신고 이후 불이익도 대상
국민권익위는 8월 10일부터 9월 9일까지 의료기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집중신고기간을 운영한다.
신고 대상은 의료기관 내 직장 내 괴롭힘을 비롯해 괴롭힘을 겪은 피해근로자의 요청에 따른 조치가 미흡한 경우,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사람이나 피해근로자에게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다.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상 공공기관에 해당하는 의료기관에서는 직무와 관계없는 부당한 지시·요구 등 행동강령 위반행위도 신고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번 조치를 새로운 ‘태움 금지법’이나 별도의 처벌제도 도입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근로자의 경우 현행법에 이미 직장 내 괴롭힘 금지와 사용자의 조사·보호 의무가 규정돼 있다. 사용자는 신고를 접수하거나 괴롭힘 사실을 인지하면 지체 없이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객관적인 조사를 실시해야 하고, 필요한 경우 피해근로자 등에 대해 근무장소 변경이나 유급휴가 등의 보호조치를 해야 한다. 신고한 근로자와 피해근로자 등에 대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도 금지된다.
의료기관 종사자라고 해서 모두 법적 지위가 같은 것은 아니다. 민간병원 근로자와 공공기관 직원, 국가기관 소속 공무원 등은 신분과 기관 성격에 따라 적용되는 법령과 규율체계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공공의료기관에서는 근로기준법 적용 여부뿐 아니라 해당 기관의 행동강령과 공공분야 갑질·부당지시 관련 규정 등도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다.
엄격한 교육과 괴롭힘은 다르다…의료현장이 풀어야 할 구조적 문제
‘태움’을 특정 간호사 개인의 성격이나 선후배 간 갈등만으로 설명하면 문제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 의료현장은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만큼 정확한 업무수행과 숙련을 위한 교육이 중요하다. 신규 인력이 선배나 관리자로부터 업무를 배우고 지시받는 관계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업무상 필요한 교육과 관계의 우위를 이용한 괴롭힘을 구분하는 조직의 기준이 중요하다.
「근로기준법」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환자 안전을 위한 엄격한 업무지시라는 이유만으로 모욕이나 위협, 업무상 적정범위를 벗어난 행위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의료기관이 이번 집중신고를 단순한 ‘태움 신고 캠페인’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를 신고했는지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괴롭힘의 경계가 조직 안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구성원이 문제를 제기할 통로가 있는지, 신고 이후에도 정상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신고자 이름만 감추면 보호일까…근무배치·평가도 살펴야
직장 내 괴롭힘 대응에서 더 어려운 문제는 신고 이후 시작될 수 있다.
신고자의 이름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것만으로 보호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구성원 간 관계가 밀접한 조직에서는 사건의 내용과 정황만으로도 신고자를 주변에서 추정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사건에서는 조사 과정에 참여한 사람이 알게 된 비밀을 피해근로자 등의 의사에 반해 다른 사람에게 누설해서는 안 된다. 신고한 근로자와 피해근로자 등에 대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도 금지된다.
따라서 의료기관의 대응은 신고 접수와 사실조사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신고 뒤 근무표나 근무장소가 합리적 이유 없이 불리하게 변경되지는 않았는지, 인사평가·배치 등에서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는지, 조사자가 사건 당사자와 이해관계에 얽혀 있지는 않은지, 조사 내용의 비밀이 조직 내부에 퍼지지는 않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병원이 지금 확인할 것은 ‘신고 건수’보다 신고 시스템
이번 집중신고기간에 병원 경영진과 인사·노무·고충처리 담당자가 확인해야 할 것도 분명하다.
내부 신고창구가 실제 구성원에게 알려져 있는지, 신고가 객관적인 조사로 연결되는지, 조사자와 사건 당사자의 이해관계를 점검하는 절차가 있는지 살펴야 한다. 조사 과정의 비밀유지와 피해자 보호조치가 문서상 규정에 그치지 않고 실제 작동하는지도 중요하다.
여기에 하나를 더 확인해야 한다. “사건이 끝난 뒤 신고자의 근무환경을 다시 확인하는 절차가 있는가”다.
괴롭힘 행위가 중단됐더라도 신고를 이유로 조직에서 고립되거나 다른 형태의 불이익이 이어진다면 실질적인 해결이라고 보기 어렵다. 신고 이후까지 살피는 사후 점검이 중요한 이유다.
청렴포털·1398·110으로 신고·상담…예방교육도 병행
집중신고는 국민권익위가 운영하는 청렴포털을 이용하거나 국민권익위원회 방문 또는 우편으로 할 수 있다. 신고 관련 상담은 전국 어디서나 국번 없이 1398 또는 국민콜 110을 이용할 수 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변호사를 통해 신고하는 비실명 대리신고 제도도 이용할 수 있다.
신고와 함께 예방교육도 진행된다. 국민권익위 소속 국가청렴권익교육원은 8월 14일 강원대학교병원을 시작으로 서울의료원, 경찰병원, 부산보훈병원, 부산대학교병원 등을 찾아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간호대학생 대상 교육도 진행하며, 9월에는 간호사를 위한 예방·대응 교육영상을 제작해 대한간호협회 누리집에 게시할 계획이다.
다만 ‘태움’이라는 표현을 모든 간호사나 의료기관의 조직문화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신고가 접수됐다는 사실만으로 특정 개인의 괴롭힘이나 법 위반이 확정되는 것도 아니다. 개별 사건은 객관적인 조사와 사실관계, 적용 법령에 따라 판단돼야 한다.
이번 집중신고의 성패 역시 한 달 동안 몇 건의 신고가 접수됐는지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더 중요한 기준은 문제를 말한 사람이 보호받고 다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조직으로 이어지는가에 있다. 의료기관이라면 9월 9일 신고기간 종료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 내부 신고창구와 조사자의 독립성, 비밀유지, 피해자 보호, 신고 이후 인사·근무관리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괴롭힘 대응은 신고를 받는 순간 시작되지만, 신고자를 보호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