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신고된 사람이 회사 대표라면 누가 조사해야 할까. 대표가 자기 사건의 조사 과정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한층 분명해졌다. 그러나 대표만 빠지면 조사는 곧바로 공정해지는 것일까.
고용노동부가 직장 내 괴롭힘 ‘셀프조사’를 막기 위해 조사 절차를 손질했다. 사용자가 괴롭힘 행위자로 신고된 경우 조사 과정에서 배제하도록 권고하고 조사위원의 기피·회피 절차도 명확히 했다. 이제 현장에서 중요한 질문은 ‘대표가 빠졌느냐’를 넘어 ‘누가 조사자를 정하고, 그 조사자는 사용자 영향력에서 독립돼 있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사장은 조사에서 빠진다…회사의 조사 의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하거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 사용자가 지체 없이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사실 확인을 위한 객관적인 조사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매뉴얼 개정은 이 조사 의무 자체를 고용노동부로 넘긴 것이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사용자가 괴롭힘 행위자로 신고된 경우 해당 사용자를 조사 과정에서 배제하도록 권고했다. 조사위원회의 기피·회피 절차를 명확히 하고, 사업장이 자체조사를 했다면 결과와 판단 근거를 신고인에게 충분히 설명하도록 한 것도 조사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따라서 ‘사장이 신고되면 모든 사건을 노동청이 대신 조사한다’고 이해하면 정확하지 않다. 사업장의 객관적 조사 의무는 유지하되, 사건 당사자인 사용자가 자신의 사건 조사에 직접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이번 개정의 핵심이다.
대표 빠져도 부사장이 조사자를 정한다면…‘형식적 배제’ 넘어야
문제는 그 다음이다.
대표이사가 행위자로 신고돼 조사에서 제외됐더라도 부사장이나 인사담당 임원이 조사위원을 선정한다고 가정해 보자. 해당 임원의 인사·평가·보수에 대표가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면 형식상 대표가 빠졌다는 사실만으로 신고자가 조사 독립성을 신뢰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실질적인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누가 조사자를 선정하는지, 조사자가 피신고인과 이해관계가 없는지, 필요한 자료와 관계자를 독립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지, 조사 결과에 부당한 영향력이 행사될 여지가 없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이번 매뉴얼이 조사위원의 기피·회피 절차를 명확히 한 것도 이런 이해충돌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장치다.
다만 사용자의 조사 배제는 새로운 법률상 처벌 규정을 만든 것이 아니라 고용노동부 공식 매뉴얼을 통한 권고다. 따라서 이를 ‘셀프조사 금지법이 시행됐다’거나 ‘사용자의 조사 참여를 법률로 전면 금지했다’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
소규모 사업장은 노동감독관 직접조사 가능…모든 사건 자동 적용은 아냐
내부에서 독립적인 조사자를 확보하기 어려운 소규모 사업장은 사정이 더 복잡하다.
별도의 감사·인사조직이 없고 대표가 인사와 업무 전반을 직접 지휘하는 사업장에서는 대표를 조사에서 제외한 뒤 누구에게 조사를 맡길 것인지부터 문제가 될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에 앞서 지난 4월 사용자가 괴롭힘 행위자로 신고된 사건 가운데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노동감독관이 선제적으로 직접 조사할 수 있도록 지침을 개선했다고 밝혔다.
여기에서도 ‘할 수 있다’와 ‘반드시 한다’를 구분해야 한다. 소규모 사업장에서 사용자가 신고됐다고 모든 사건을 노동감독관이 자동으로 직접 조사하도록 법률이 바뀐 것은 아니다.
사업장 내부조사와 노동관서의 감독·조사 체계가 함께 존재하면서, 특히 사용자 자신이 피신고인이거나 내부에서 조사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사건에서 공적 조사 필요성이 커지는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회사 조사 못 믿겠다면…노동관서 진정 절차도 확인해야
신고자는 회사 내부절차만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용노동부 노동포털은 ‘진정서(임금체불, 직장 내 괴롭힘, 기타 노동법 위반)’ 민원을 운영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등 노동관계법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다.
특히 사용자가 피신고인이어서 내부조사의 독립성이 우려된다면 세 가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첫째, 피신고인인 사용자가 조사에서 실제 배제됐는가.
둘째, 조사자를 누가 선정했고 피신고인과 이해관계는 없는가.
셋째, 조사 결과뿐 아니라 그 판단 근거까지 제대로 설명받을 수 있는가.
조사 중 피해자 보호도 별개의 문제다. 「근로기준법」은 조사 기간에도 피해근로자 등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면 근무장소 변경이나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 경우 피해근로자 등의 의사에 반하는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 신고자나 피해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는 것도 금지된다.
신고자도 피신고인도 믿을 수 있어야 ‘객관적 조사’다
조사 독립성은 신고인만을 위한 원칙이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은 신고됐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했는지,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었는지, 그 결과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켰는지를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자료를 토대로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조사자가 어느 한쪽의 주장을 미리 사실로 전제하지 않고 진술과 증거를 확인할 수 있어야 신고인의 권리와 피신고인의 방어권을 함께 보장할 수 있다.
조사 절차의 중요성은 신고 증가세에서도 확인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2021년 7,774건에서 2022년 8,961건, 2023년 1만1,038건, 2024년 1만3,601건, 2025년 1만6,373건으로 늘었다. 4년 사이 두 배를 넘어섰다.
신고 증가를 괴롭힘 발생 자체가 같은 비율로 늘었다는 의미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사건이 늘수록 ‘괴롭힘인가 아닌가’라는 결론 못지않게 누가 어떤 절차로 조사해 그 결론에 도달했는가가 중요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사장만 빼면 된다’에서 ‘조사권의 독립’으로
고용노동부의 이번 매뉴얼 개정은 직장 내 괴롭힘 조사에서 하나의 분명한 기준을 세웠다. 가해자로 신고된 사용자가 자신의 사건 조사 과정에 관여하는 이른바 ‘셀프조사’를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플소사이어티가 주목하는 다음 과제는 형식적 배제를 실질적 독립성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대표가 조사실에 들어오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대표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이 조사자를 정하고 조사 범위나 결과 보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신고자가 느끼는 공정성 문제는 남을 수 있다.
기업과 기관도 사건이 발생한 뒤 조사자를 찾는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사용자나 고위 임원이 피신고인이 되는 경우 누가 조사자를 선정할지, 어떤 경우 외부 전문가를 활용할지, 조사위원 기피·회피와 자료 접근·결과 보고를 어떻게 관리할지 등을 내부 규정과 절차로 미리 정해두는 것이 독립성 확보에 도움이 된다. 외부 전문가 활용 자체가 이번 개정으로 새롭게 의무화된 것은 아니라는 점도 구분해야 한다.
신고자에게 남는 질문도 명확하다. “사장이 조사에서 빠졌는가”에서 멈추지 말고 “그렇다면 누가 조사자를 정했고, 그 조사는 정말 독립적인가”까지 확인하는 것.
직장 내 괴롭힘 ‘셀프조사’를 막는 제도의 성패는 결국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영향력으로부터 조사 과정 자체를 얼마나 독립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