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두려움과 함께 살아가는 법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할 때 실패가 두렵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이별이 두렵고, 직장을 잃을 가능성이 보이면 생계가 두렵다. 나이가 들수록 질병과 노후가 걱정되고, 젊은 세대는 취업과 경쟁,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불안을 느낀다.
두려움은 특별히 약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감정이 아니다. 살아 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위험을 감지하고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문제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 자체가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이미 일어난 것처럼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세계보건기구는 누구나 때때로 불안을 느낄 수 있지만, 불안이 지나치게 강하고 오래 지속되어 일상생활과 관계, 학업이나 직업 기능을 방해한다면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불안장애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2021년 기준 전 세계 인구의 약 4.4%, 약 3억 5,900만 명이 불안장애를 경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치료가 필요한 사람 가운데 실제 치료를 받는 비율은 약 27.6%에 불과하다.
불안을 의지가 약하거나 신앙이 부족한 증거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불안은 개인의 생각만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 상실 경험, 신체 상태, 심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날 수 있다. 기도와 묵상은 중요한 영적 자원이지만, 심각한 불안을 무조건 신앙만으로 견디게 하는 것은 또 다른 짐을 지우는 일이 될 수 있다.
두려움에는 언제나 미래가 들어 있다.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면 어떻게 하지?”
“병이 더 나빠지면 어떻게 하지?”
“경제적으로 무너지면 어떻게 하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마음속에서 반복해서 재현할수록, 사람은 현실에서 사용할 힘을 상상 속 재난에 소모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막으려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관계를 피하다가 더 깊은 외로움에 빠진다.
두려움은 위험을 알려 주는 경보장치이지만, 경보장치가 지나치게 예민해지면 작은 연기에도 온 집이 불타는 것처럼 반응한다. 경보를 없애는 것이 해답은 아니다. 실제로 불이 났는지, 단지 요리하다 생긴 연기인지 분별하는 힘이 필요하다.
불안 관리란 모든 가능성을 통제하는 기술이 아니다.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진 최악의 시나리오와 지금 눈앞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구분하는 훈련이다.
불안한 생각이 떠오를 때 우리는 먼저 물어야 한다.
“이것은 현재의 사실인가, 미래에 대한 예상인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까지 책임지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들이 두려움을 즉시 없애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두려움이 운전대를 잡지 못하도록 한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삶의 문제를 크게 두 영역으로 나누었다. 우리의 판단과 선택, 욕망과 행동처럼 우리에게 달린 것이 있는가 하면, 타인의 평가, 사회적 지위, 재산의 변화, 질병과 죽음처럼 우리의 뜻만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 할수록 인간은 불안과 좌절에 예속된다고 보았다.
이 가르침은 “세상을 포기하라”는 체념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책임져야 할 영역을 분명히 하라는 요청이다.
시험의 결과는 완전히 통제할 수 없지만 오늘 공부할 시간은 선택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할지는 통제할 수 없지만 정직하게 말하고 행동할 수는 있다.
질병의 모든 진행을 막을 수는 없지만 진료를 받고 몸을 돌보는 일은 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불의를 당장 없앨 수는 없지만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을 수는 있다.
스토아 철학을 감정을 느끼지 않는 냉정함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스토아 철학이 지향한 것은 감정 자체의 제거라기보다, 왜곡된 판단과 과도한 충동에 끌려다니지 않는 삶에 가까웠다. 현대의 철학 연구에서도 스토아적 평정은 아무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 무감각이 아니라, 외부 사건에 조종당하지 않고 자신의 반응을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상태로 설명된다.
두려움이 찾아왔을 때 스토아적 질문은 단순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에게 달린 것은 무엇인가?”
그 질문을 붙드는 순간 두려움은 막연한 안개에서 구체적인 과제로 바뀐다. ‘내 인생이 망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은 ‘오늘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인가?’라는 행동으로 바뀔 수 있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선택하는 능력이다.
스토아 철학이 통제의 경계를 가르친다면, 신앙은 그 경계 밖의 세계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묻는다.
성경은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을 꾸짖기만 하지 않는다. 시편 기자는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라고 고백한다. 중요한 것은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내가 두려워하는 날”이라는 표현이다. 시편의 신앙은 두려움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두려움이 찾아온 바로 그 자리에서 신뢰를 선택한다.
이사야서의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에도 이유가 붙어 있다. 인간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담대함은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낙관이 아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계의 확신이다.
예수께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도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내일의 염려를 오늘로 끌어와 두 날의 짐을 한꺼번에 지지 말라는 가르침에 가깝다. 오늘의 책임은 오늘 감당하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까지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신뢰는 원하는 결과를 보장받는 거래가 아니다. 신뢰는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혼자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다루는 네 가지 연습
첫째, 두려움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
막연히 “불안하다”고만 말하면 감정은 더 커진다. 무엇이 두려운지 구체적으로 적어 보아야 한다. 실패인지, 비난인지, 가난인지, 질병인지, 관계의 단절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감정과 자신 사이에 작은 거리가 생긴다.
“나는 불안한 사람이다”가 아니라 “지금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해 보자. 두려움은 나의 전부가 아니라 지금 지나가는 하나의 경험이 된다.
둘째,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나누어야 한다.
종이를 반으로 나누고 왼쪽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오른쪽에는 내 힘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을 적어 보자. 그리고 오늘의 에너지를 왼쪽에 집중한다.
두려움은 흔히 통제할 수 없는 문제를 반복해서 생각하게 만들고, 정작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은 미루게 한다. 전화 한 통, 진료 예약, 한 시간의 공부, 솔직한 대화, 도움 요청처럼 작지만 실제적인 행동이 불안의 악순환을 끊는다.
셋째, 몸을 현재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불안은 생각만의 문제가 아니다. 심장이 빨리 뛰고 근육이 긴장하며 호흡이 가빠질 수 있다. 천천히 호흡하고, 짧게 걷고, 규칙적으로 식사하고 잠자는 일은 사소해 보이지만 마음을 현재로 돌아오게 한다. 세계보건기구도 규칙적인 운동과 수면, 이완 훈련, 마음챙김 등을 불안 관리에 도움이 되는 자기 돌봄 방법으로 제시한다.
넷째, 혼자 견디는 것을 용기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두려움을 털어놓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삶의 안전망이다. 불안이 수개월 동안 지속되거나 수면과 일상, 관계를 심각하게 방해한다면 상담과 진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인지행동치료와 노출치료를 비롯한 심리치료는 불안 증상을 줄이는 데 근거가 있는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다.
기도와 치료, 신앙과 상담은 서로 경쟁하는 선택지가 아니다. 인간의 영혼과 마음과 몸을 함께 돌보는 서로 다른 통로가 될 수 있다.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을 기다리다 보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다.
두려움이 없어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처받을 가능성을 알면서도 마음을 여는 것이 사랑이다. 실패하지 않을 확신이 있어야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가치 있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 용기다.
우리는 두려움을 문밖으로 완전히 쫓아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려움을 손님으로 맞을 수는 있다.
“네가 왜 찾아왔는지 알겠다. 나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왔겠지. 그러나 오늘 내 삶의 방향은 네가 결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때 두려움은 주인에서 안내자로 내려온다.
스토아 철학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신뢰의 영성은 다시 묻는다.
“네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은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인간은 자신의 몫을 책임지고, 자신의 힘을 넘어선 것은 하나님께 맡길 때 비로소 오늘을 살 수 있다. 두려움 없는 삶이 평안한 삶은 아니다. 두려움이 있어도 사랑하고, 행동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삶이 평안한 삶이다.
두려움은 길이 막혔다는 증거가 아니다.
어쩌면 두려움은 지금 중요한 길 앞에 서 있다는 표시인지도 모른다.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떨리는 마음을 데리고 오늘의 한 걸음을 내딛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