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권을 빼앗기고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인신매매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부는 7월 30일 세계 인신매매 반대의 날을 맞아 인신매매 예방과 피해지원 제도를 알리는 대국민 캠페인과 현장 종사자 교육을 추진한다. 이번 캠페인은 피해자가 직접 도움을 요청하기를 기다리기보다 현장에서 착취 징후를 조기에 발견해 전문 지원체계로 연결하는 대응 역량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성평등가족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TV와 유튜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한 예방 홍보를 실시하고, 경찰·출입국·노동·복지 등 관계기관 종사자를 대상으로 피해자 식별과 지원 연계 교육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인신매매 피해자가 스스로 피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보복, 체류 문제 등을 우려해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현장의 초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납치가 아니어도 인신매매…'착취'가 계속된다면 의심해야
인신매매는 사람을 납치하거나 해외로 불법 이동시키는 범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취약한 처지를 이용해 노동이나 성적 착취를 지속하면서 여권이나 신분증을 압수하거나, 임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통제하고, 채무를 이유로 일을 강요하거나,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하는 행위 역시 인신매매의 대표적인 징후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현장 사례로는 취업 알선을 통해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가 여권을 사업주에게 맡긴 채 임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허락 없이는 숙소나 작업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단순한 임금체불로 오인되기 쉽지만, 착취가 지속되고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다면 인신매매 여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피해자 보호의 출발점은 '신고'가 아니라 '발견'
정부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국민 인식 개선과 함께 현장 대응 역량을 높이는 데 집중한다. 관계기관에는 피해자 식별지표와 지원제도를 담은 안내자료를 배포하고, 경찰과 출입국, 노동 분야 종사자 및 신고 의무자를 위한 교육영상과 교재도 보급할 계획이다.
현장에서는 ▲여권이나 신분증을 다른 사람이 보관하고 있는지 ▲직장과 숙소를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는지 ▲임금을 본인이 직접 받고 관리하는지 ▲채무나 위약금을 이유로 일을 강요받고 있는지 ▲가족이나 수사기관 신고 등을 빌미로 협박받고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정부는 이러한 정황이 확인될 경우 단순한 노동분쟁이나 출입국 문제로만 판단하기보다 인신매매 피해 가능성을 함께 검토하고 전문 지원기관으로 신속히 연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확인서 '용도 제한' 삭제…불필요한 제약 완화
피해자 지원 제도도 개선됐다.
성평등가족부는 지난 7월 22일 「인신매매등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령을 공포·시행했다. 이번 개정으로 인신매매등 피해자 확인서에 적혀 있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제한 문구가 삭제됐다.
이는 피해자가 확인서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제약과 심리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다만 확인서가 모든 법적 절차에서 동일한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며, 실제 활용 범위는 관련 법령과 개별 사건에 따라 제출받는 기관이 판단한다.
정부는 현재 경찰 등 관계기관에서 피해자가 확인되면 전문 지원기관으로 신속히 연계하고 있으며, 긴급한 경우에는 피해자 확인 이전에도 구조지원비를 우선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피플소사이어티 해설|인신매매 대응의 핵심은 '착취의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것
이번 세계 인신매매 반대의 날의 핵심은 새로운 처벌 규정이 시행됐다는 데 있지 않다. 지난 7월 22일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피해자 확인서 활용 과정의 불필요한 제약을 줄였고, 7월 30일을 계기로 피해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지원기관으로 연결하는 예방 중심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한 변화다.
인신매매는 외국인 노동자나 성착취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동, 교육, 의료, 복지, 청소년 보호 등 다양한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중대한 인권침해다. 피해자는 스스로 구조를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현장 종사자는 '왜 신고하지 않았는가'보다 '착취의 신호를 놓치지 않았는가'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피해자를 법 위반자로 먼저 판단하기보다 안전을 확보하고 전문 지원체계로 연결하는 것이 인권 보호의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