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사회복지현장④] “이건 제 업무가 아닙니다”: 침묵을 끝내는 순간

거절은 갈등이 아니라 기준이다

권익보호의 완성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현장을 바꾸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실천이다


“이건 제 업무 범위를 벗어나는 요청입니다.”
이 한 문장을 말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웠을까.

 

사회복지 현장에서 ‘거절’은 오랫동안 조심해야 할 행동으로 여겨져 왔다.
이용자와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 조직 내 분위기, 그리고 스스로에게 요구되는 책임감이 겹치면서 종사자는 많은 상황을 설명 없이 감당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분명히 구분해야 할 시점이다.
업무의 범위와 개인의 희생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사회복지 종사자는 전문성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무를 수행한다.
이는 정해진 역할과 기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 경계를 벗어난 요구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업무 외 요청, 반복적인 감정적 대응 요구, 사적인 연락 등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반복될수록 기준이 흐려진다는 점이다.
한 번 수용된 요구는 다음 기준이 되고, 결국 종사자는 점점 더 많은 영역을 감당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인내가 아니라 ‘기준 설정’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개인의 판단에만 맡겨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현장에서 일관되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조직 차원의 기준과 지원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실제 대응은 감정이 아니라 절차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업무 범위를 벗어나는 요청이 발생했을 때는 상황을 명확히 설명하고, 필요한 경우 기관의 기준에 따라 조정해야 한다.
개인이 직접 해결하려 하기보다, 조직의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기록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
반복되는 상황이나 문제는 구두로 넘기기보다, 일정한 방식으로 정리하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
기록은 개인의 부담을 줄이고, 조직이 문제를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본적인 수단이다.

 

이러한 대응이 종사자 개인의 부담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조직 차원의 기준과 보호 체계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종사자가 기준을 말했을 때 그것이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조직의 원칙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관의 역할 역시 분명하다.
종사자가 문제를 제기했을 때 이를 개인의 갈등으로 축소하기보다, 업무 환경의 문제로 인식하고 접근해야 한다.
종사자를 보호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조직 운영의 기본 책임이다.

 

최근에는 종사자 권익 보호와 관련된 기준과 지원 체계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제도 보완을 넘어, 현장에서 실제로 적용 가능한 대응 환경을 만들기 위한 흐름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변화의 출발점은 크지 않다.
익숙했던 방식에서 한 걸음 벗어나는 것, 그리고 기준을 말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지금까지의 질문이 “참아야 하는가”였다면,
이제는 “어디까지가 업무인가”를 묻는 것이 필요하다.

 

권익보호는 특별한 행동이 아니다.
정해진 기준을 지키는 과정이며, 그 과정이 반복될 때 현장은 조금씩 바뀐다.

 

침묵이 이어질수록 기준은 흐려지고,
기준이 세워질수록 현장은 분명해진다.

 

이제 선택의 방향은 분명하다.
참는 현장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기준이 작동하는 현장을 만들 것인가.

 

기준을 말하는 일은 개인의 용기가 아니라,
현장을 바꾸는 시작이다.


그리고 그 기준이 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조직 안에서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변화는 지속될 수 있다.

 

기준을 말하는 일은 개인의 용기가 아니라,
현장을 바꾸는 시작이다.

 

그렇다면 이 기준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지켜질 수 있을까.

 

다음 5편에서는
종사자의 대응이 개인의 부담으로 남지 않도록,
조직이 어떤 역할과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작성 2026.05.15 08:34 수정 2026.05.23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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