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기획②] “끝까지 가족이 해야 하나요” 돌봄을 내려놓을 권리는 왜 말해지지 않는가

우에노 지즈코 『돌봄의 사회학』이 던진 두 번째 질문, ‘돌보지 않을 권리’

버티다 무너지는 가족들… 임계점 이후에도 비어 있는 사회

돌봄을 선택할 권리와 내려놓을 권리, 제도는 어디까지 준비됐나

“가족 돌봄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돌봄을 사회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지고 있다.”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걸까요.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60대 박모 씨는 병상에 누운 배우자를 5년째 돌보고 있다. 하루는 버틸 수 있지만, 일주일과 한 달, 그리고 몇 년이 쌓이면서 삶의 균형은 무너졌다. 밖에 나가는 일은 줄었고, 사람을 만나는 일도 끊겼다.

 

“힘들다고 말하면 죄인 같아요. 가족인데 어떻게 그만두냐는 말을 더 많이 들으니까요.”

 

돌봄은 여전히 ‘끝까지 감당해야 하는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질문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현실이 되고 있다. 과연 돌봄은 어디까지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가.

 

『돌봄의 사회학』은 이 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질문을 던진다. 돌봄을 ‘해야 하는 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의 문제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돌볼 권리만큼, 돌보지 않을 권리도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돌봄을 이야기할 때 ‘책임’만 말한다. 부모를 돌보는 것은 당연하고, 가족이라면 끝까지 함께해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현실은 그 기대를 버티지 못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돌봄은 시간과 체력, 감정, 경제적 자원을 동시에 요구하는 노동이다. 장기간 지속될수록 개인의 삶은 점점 축소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둘 수 없다’는 압박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한다.

 

이때 필요한 개념이 바로 ‘돌보지 않을 권리’다.

 

이는 무책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순간에, 개인이 무너지기 전에 사회적 지원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다.

 

“버티다 무너진 뒤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기 전에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이 원칙이 작동하지 않는 한, 돌봄은 계속해서 개인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 된다.

 

 

“가족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그 다음은 누구의 몫인가”

 

문제는 임계점 이후다.

 

많은 가족이 돌봄을 버티다 결국 한계에 도달하지만, 그 다음을 책임지는 구조는 여전히 부족하다. 시설 입소 대기, 서비스 부족, 정보의 단절 등 현실적인 장벽은 여전히 높다.

 

결국 선택지는 제한된다. 계속 버티거나, 무너진 뒤에야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이 구조는 돌봄을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아니라 ‘버티는 구조’로 만든다.

 

“돌봄은 버티는 문제가 아니라, 나누는 문제다.”

 

이 문장은 지금의 돌봄 체계가 안고 있는 핵심 한계를 드러낸다.

 

 

제도는 있지만, 공백도 존재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 이후 돌봄은 일정 부분 사회화됐다. 방문요양, 주야간 보호, 시설 서비스 등 다양한 지원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공백이 지적된다.

 

서비스 시간의 제한, 등급 판정의 어려움, 지역별 격차 등은 가족 부담을 완전히 덜어주지 못한다. 특히 돌봄이 장기화될수록 이 공백은 더 크게 체감된다.

 

“제도가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도 않아요.”

 

현장의 목소리는 제도의 필요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돌봄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돌봄을 ‘선택 가능한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가족이 직접 돌보고 싶다면 충분한 지원이 따라야 하고, 반대로 감당하기 어렵다면 자연스럽게 사회적 돌봄으로 전환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가족이 먼저 버티고, 그 다음에야 개입하는 구조’로는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

 

돌봄은 개인의 의지로 유지되는 영역이 아니라, 사회가 설계해야 할 영역이다.

 

 

“돌봄을 내려놓는 순간, 죄책감이 아니라 권리가 되어야 한다”

 

많은 돌봄 제공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감정은 죄책감이다. 더 이상 돌볼 수 없다는 판단을 했을 때조차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하지만 이 감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결과일 수 있다.

 

돌봄을 ‘미담’으로만 다루는 사회에서는 내려놓는 선택이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쉽다. 반대로 돌봄을 ‘권리’로 바라보는 사회에서는 선택이 존중받는다.

 

이 차이는 결국 누가 책임을 지는가의 문제다.


돌봄을 개인의 의무에서 선택 가능한 권리로 전환하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가족의 과부하를 예방하고, 돌봄 공백을 줄이며, 지속 가능한 사회적 돌봄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돌봄은 끝까지 버티는 문제가 아니다. 나눌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해진다.

 

작성 2026.04.19 14:27 수정 2026.04.1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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